본문 바로가기

경제학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모든 학문에는 나름의 용어와 사고방식이 있다. 수학에는 공식, 적분, 백터 공간과 같은 전문용어가 있고 심리학에서는 자아, 초자아, 인지부조화와 같은 용어가 있으며 법률가들은 관할지, 불법행위, 금반언의 원칙 등과 같은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요, 공급, 탄력성, 비교우위, 소비자 잉여, 경제적 순손실 등이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이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 책에서 새로운 용어들, 그리고 늘 접하지만 경제학자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접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용어들이 필요 이상으로 난해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런 전문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경제학적 사고를 배우는 것은 이 책을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다. 물론 하루아침에 수학자나 심리학자, 법률가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론과 사례연구, 경제 관련 신문기사 등을 통해 여러분은 경제학적 사고를 연습하고 체득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질 것이다.

경제학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경제학자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경제학의 방법론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즉, 경제학자들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경제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과학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경제문제를 연구한다. 경제학자들이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물리학자들이 물질을 연구하고 생물학자들이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학자들도 먼저 이론을 만든 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그 이론이 맞는지를 검증한다.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말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시험관이나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의 핵심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한 엄정한 관찰과 검증, 즉 과학적 방법론이다. 이런 방법론은 지구 중력에 대한 연구나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연구, 나라 경제에 대한 연구 등에 모두 적용된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과학이란 일상의 생각을 정밀하게 가다듬은 것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은 물론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에도 성립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현상을 과학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는데 익숙지 않다. 여기에서는 경제학자들이 경제현상을 분석할 때 과학적 논리를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17세기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뉴턴은 어느 날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두 물체 간에 적용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실험을 통해 뉴턴의 법칙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성립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비록 아인슈타인에 의해 모든 경우에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뉴턴의 이론은 관찰된 현상을 너무나 잘 설명했지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물리학과에서 이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관찰된 현상과 이론의 이러한 관계는 경제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경제학자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고, 그는 이런 관찰을 토대로 인플레이션에 관한 이론을 만들기로 했다고 하자.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너무 많은 돈을 발행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하자.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 경제학자는 다른 여러 나라의 물가와 통화량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해야 한다. 만약 통화량의 증가가 물가 상승률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면 그는 인플레이션 이론의 유효성에 대해 의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통화량의 증가와 물가 상승률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그는 자신의 이론을 더욱 확신할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론과 관찰에 의존하지만 경제학에는 독특한 어려움이 있다. 즉 경제학에서는 실험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물리학에서는 중력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여러 종류의 물건을 떨어뜨려봄으로써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반해 경제학자들은 단지 인플레이션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다. 결국 경제학자들은 천문학자나 생물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처럼 우연히 만들어지는 현상과 자료에 의존하여 연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학 연구는 실험실에서의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는 자료에 크게 의존한다. 중동전쟁이 발발하여 원유 공급이 중단되면 전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이 폭등한다. 이렇게 되면 석유나 석유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생활수준이 낮아진다. 정책담당자들은 최선의 대응책을 찾기 위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경제학자들에게 주요 천연자원 가격의 변화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며 전쟁이 끝나 원유 가격이 정상 가격으로 되돌아간 이후에도 이 좋은 기회는 상당 기간 지속된다. 만약 당신이 물리학자에게 10층 건물 꼭대기에 떨어진 조약돌이 땅에 닿는 데 얼마나 걸릴지 물어본다면 그는 그 조약돌이 진공상태에서 떨어진다는 가정하에 답변할 것이다. 물론 이 가정은 틀린 가정이다. 건물 주위에는 공기가 존재하므로 조약돌의 낙하속도는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와의 마찰에 의한 효과는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것이므로 진공상태에서 조약돌이 떨어진다고 가정함으로써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문제를 매우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경제학자들도 같은 이유로 가정을 사용한다. 가정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해서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국제무역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직 두 나라만 존재하고, 오직 두 재화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경우를 보자. 물론 이 세상에는 훨씬 많은 국가가 존재하고 수천 가지의 재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두 국가와 두 재화의 가정을 통해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며 이 가상세계에서의 국가 간 무역을 이해한 뒤에는 이를 이용하여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의 국제무역 현상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사과의 요령은 그것이 물리학이든, 생물학이든, 경제학이든 어떤 가정을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조약돌이 아니라 가벼운 비치볼을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뜨린다고 하자. 물리학적으로 이 경우에 공기의 저항이 없다는 가정은 매우 부적절하다. 비치볼은 조약돌보다 크면서도 가벼워 공기의 마찰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진공상태에서 중력에 대해 조약돌의 낙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일리가 있지만 비치볼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